<결혼식에 다녀와서>
오늘은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처음엔 가지 않으려 했다. 아빠가 “장례식 아니면 안 와도 된다”고 하셨을 때, 어색한 자리를 피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가 다시 마음을 바꾸셔서, 결국 참석하게 되었다.
결혼식. 지난번에 갔던 ‘샤브쌈주머니’보다는 음식이 알차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연어는 실컷 먹었지만, 간식은 정말 별로였다. 결혼식은 축하하는 자리인데, 나는 자꾸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고, 눈치를 보는 내 모습이 불편했다. 다행히 그림자 취급은 받지 않아서 감사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다.
요즘 들어 세상 속에서의 ‘존재적 관점’을 자주 고민하게 된다. 말씀의 공급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경 안에서 참되신 아버지께서 주시는
존재적 관점,
관계적 관점,
사명적 관점을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결혼식장에 온 사람들을 보며 나보다 옷을 덜 갖춰 입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비교는 결국 나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낼 뿐이다.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한 내 마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나를 의식하는 유약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세상의 기준에 얽매여 흔들리는 나 자신을 보며, 이런 자리들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도 결혼식 같은 자리에 갈 일이 많겠지만, 나는 본질에 집중하고 싶다. 기쁨이 있는 자리에서는 전심으로 기뻐하고, 슬픔이 있는 자리에서는 진심으로 위로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좁은 길을 걷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세상적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로서의 나의 위치도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는, 언약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이뤄져 가는 귀한 과정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관점, 그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을 외모나 위치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고독하거나 외로울 수 있지만, 본질에 집중하며 믿음으로 전진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며, 세상을 따뜻한 인격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글을 남긴다.
나의 유약함을 고백하고, 흐트러진 생각들을 믿음으로 다듬고 싶어서. 지금 이 거실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나의 죄를 고백하고 싶었다.
내 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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