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르시시스트고, 사이코패스야.”
남편이 한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심리학자나 교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며 “그 사람, 조금 나르시시스트 같아…”라고 말했을 때, 남편이 그렇게 대답했다.
요즘 나는 <성경적 상담 시리즈> 중 『변화는 믿음에서』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행동에 종교적 열심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믿음으로 행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결국은 내 인간적인 열심과 의욕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세상은 사람을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경계성 성격장애’
‘관계중독’
등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을 구분 짓기 시작하면, 도무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질 수밖에 없다.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변화는 믿음에서』를 다시 펼쳐 읽었는데, 그 말씀이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 모든 걸 맡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놓으려 했던 내 마음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님을 깨달았다. 놀라웠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인간을 통해 일하시고, 나 또한 그렇게 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존재의 의미, 사명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살아온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것이 쓰디쓴 결과로 나타났다.
그 사람에게 다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는 아직 조심스러우나,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우선 직장을 잘 구하고, <성경적 상담 시리즈>를 통해 나의 상태와 상황을 점검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말했듯, 나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일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처럼,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영적 전쟁 속에서 끝까지 승리하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힘으로는 안 될지라도, 주님이 하시면 되리” 이 찬양 가사를 “주님, 도와주세요. 저는 힘이 없어요."라고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알겠다. 더욱 기도하며, 성경 말씀 안에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사람이 두려웠던 내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일 뿐, 믿음의 기준 안에서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먼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며,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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