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관계에서 1년 반이나 감정을 눌렀을까?
왜 나는 그 관계 안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내 감정을 억눌렀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그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그녀의 상처가 너무도 깊어 보였고, 그 아픔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가 육체적 위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음이 진짜 소망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나 자신도 과거에 깊은 혼란과 폐해를 겪은 적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그녀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하나님이 이끄실 거야"라는 기대 >
나는 기도하며 진심으로 이 관계에 임했고,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녀를 변화시켜 주시리라는 기대감도 품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감동도 있었습니다. 죽어가던 영혼처럼 보이던 그녀가 교회에 나와 “계속 나오겠다”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도 그 감정이 이해됐고, 공감도 잘 되었습니다. 심지어 남편도 “이렇게까지 상담을 잘할 수 있다니, 나는 못하겠다”며 나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그 시간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사명이란 생각이 들었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 듯한 감사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 점점 기울기 시작한 관계 >
그러나 관계는 점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1시간 남짓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는 평일의 시간을 내어 그녀를 위로하고, 들어주고, 조언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도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회복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편도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는 인생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만 만나면
전세 역전이 가능하다.”
이 한 가지 생각으로, 나는 힘든 것도 힘든 줄 모르고 그녀의 감정에만 몰입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폭발할 때 “지금 통화 괜찮아?”라는 배려도 없이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쏟아냈고, 나는 묵묵히 들어주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늘 그녀였습니다. 그런 관계조차도 나는 ‘믿는 자의 섬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갈등의 징후들 >
1년이 지나고, 나는 직장 준비로 인해 조금씩 바빠졌습니다. 그녀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기에 외로울까 봐, 교회 후 커피를 마시거나, 가끔은 등산을 함께하며 여전히 시간을 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의견이 조금만 어긋나도 그녀는 숨소리, 표정, 짜증 등으로 불편함을 드러냈습니다.
어느 날은 다른 사람에게 쌓인 감정을 나에게 화내듯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알겠어?”라고 소리친 후, 내가 말하고 있음에도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습니다. 그때, 정말 손이 떨렸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저는 생각했죠.
“교회가 아니면 그녀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참자.”
< 내 감정은 어디 있었을까? >
지금 돌아보면, 우리의 대화는 99%가 그녀의 감정, 그녀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지만, 저는 그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꽤나 예민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교회 설교가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다시 설득을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듯하던 어느 날, 그녀와 밥을 먹게 되었고, 계산하려 하자 내 카드를 빼앗듯 가져가며 본인이 계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샀죠. 그전에 나는 “이제 상처 얘기는 그만하자”라고 먼저 말했고, 대신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상하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지금 현실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분노의 표출, 그리고 스크래치 >
집에 데려다주며 “뭐가 고마워서 밥까지 샀어?”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묻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 입을 다물었는데, 잠시 후 “00 사람에 대해 조언해 줘서 고마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구나, 하고 헤어지려는 찰나, 그녀가 다시 내게 다가왔고 창문을 붙잡고 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 말은 들리지 않는 듯했고, 내가 “나한테 욕하는 거야?”라고 물어도 아무 대답 없이 자기감정을 분출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를 바로 벗어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분노를 끝까지 듣고 말았고, 그날 이후 내 마음엔 깊은 스크래치가 남았습니다.
나는 왜 그때까지 몰랐을까 그땐 단순히 “왜 저러지?”라고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분노가 나에게 향하기 시작했을 때 “이건 더 이상 안 된다” 는 것을 느꼈습니다.
놀랍게도, 목사님께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제가 그렇게 곪아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만약 목사님께서 제 감정에 공감하며 위로만 해주셨다면, 저는 여전히 문제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더 품어주고, 사랑하라”
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 덕분에 저는 오히려 이 병든 관계에서 조금 더 일찍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 이것이 나의 이야기입니다. >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진실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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