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을 위한 고백 >
내 감정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선을 그으려 한다. 나는 내 감정의 한계를 아이에게까지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통해 깨달았다. 정말이지, 지금이라도 그 병적인 관계를 끊어낸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녀가 주도적으로 곪은 상처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할 때, 나는 수백 번은 아니더라도 엄청난 수십 번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상처의 반복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옳은 방식이 아니었다는 걸.
< 더는 내가 ‘구원자’가 아니다 >
물론, 삶이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까지가 내 몫이다. 그 이후로는 그들의 선택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 진짜 힘든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떠올려 보라. 정말 돕고 싶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면 된다.
혹시 내 이웃이 자살한다면, 그것은 나의 탓이 아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내가 모든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는 몽상, 구원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 이제 나는 내 인생의 주체로 살아야 한다. >
이제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을 돕는 슈퍼맨이 되려고 하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며, 내 삶을 주도적으로, 아름답게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내 가족, 나의 아이와 남편을 돌보아야 한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감정적으로 험한 말을 하면서, 이웃에게는 무한정 사랑을 베풀 것처럼 하는 것은 가식이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자. 가정이 먼저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섬기고, 사랑하자.
< 억울하고, 허탈한 이 감정의 이름 >
솔직히 너무 억울하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감정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을 그렇게까지 쏟아낸 적도 없다. 정제된 언어로 말했고, 늘 절제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병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을까. 그것이 너무 무서웠다. GPT를 통해 그녀에게 ‘경계성 성격장애’와 ‘관계 중독’의 특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정제된 문자를 보내도 그녀는 분노로 응답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고, 정말로 공포심까지 느껴졌다.
< 이제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
이제는 손을 떼야할 때다. 앞으로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선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관계라면, 처음부터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자. 결국 사람은 자기 죄의 짐 하나 지고 살아가는 것도 벅찬 존재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욱 겸손히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 끝은 결국 ‘승리’로 >
사단은 내가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지치고 병들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다.
힘내자!!
지금 느껴지는 분노, 억울함, 허탈함조차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말씀으로 이기자. 감정에 끌려가지 말고, 진리 위에 서서, 사랑과 분별로 걸어가자. 힘내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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